이벤트
사절단을 내친 총대주교

콘스탄티노플이 우리 사절단을 차갑게 내쳤습니다. 총대주교는 우리의 신앙 고백을 또 다른 형태의 이단으로 치부하며 일축했고, 사절은 아무런 의전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나고 말았습니다. 이는 루터교가 로마는 물론이고 콘스탄티노플과도 궤를 달리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상기시켜 줍니다.
이벤트 연쇄
각 이벤트는 바로 위에 있는 이벤트에 의해 발생합니다. 그 아래 줄에는 어떤 선택지가 언제 이 이벤트로 이어지는지 표시됩니다.
콘스탄티노플에 보내는 필립 Last Name의 서신
루터교 개혁가들의 서신↳ 선택지 A “우리의 신앙 고백을 들려 [필립 Last Name](을)를 파견하라.” · 60–90일 후
총대주교의 화답↳ 선택지 A “개혁가들과 신중히 신학적 대화에 임하라.” · 60일 후
정교회 학자의 방문↳ 선택지 A “아무리 좁은 다리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은 법이다.” · 180–365일 후
사절단을 내친 총대주교↳ 선택지 B “저들 또한 이단에 불과하다. 당장 내쫓아라.” · 30일 후
정의in_game/events/situations/D008_reformation.txt:139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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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42title = reformation.20.title 사절단을 내친 총대주교
143desc = reformation.20.desc 콘스탄티노플이 우리 사절단을 차갑게 내쳤습니다. 총대주교는 우리의 신앙 고백을 또 다른 형태의 이단으로 치부하며 일축했고, 사절은 아무런 의전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나고 말았습니다. 이는 루터교가 로마는 물론이고 콘스탄티노플과도 궤를 달리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상기시켜 줍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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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45historical_info = reformation.20.historical_info 튀빙겐 서신 교환은 결국 교리적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습니다. 예레미아스 2세 총대주교의 세 차례에 걸친 답신(1576년, 1579년, 1581년)은 솔라 피데(오직 믿음), 솔라 스크립투라(오직 성경), 필리오퀘에 대한 루터교의 입장을 단호히 거부하며, 정교회는 루터교가 혁신이라 여기는 바를 수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. 루터교 측도 끝내 더 이상의 서신 교환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렸고, 이 교류는 1581년에 완전히 막을 내렸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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